배움이 즐거워지는 4개의 순간

어느 마을에 피리를 배우고 싶어 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의 유명한 피리 명인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명인은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왜 피리를 배우고 싶은가?” 소년은 자신 있게 답했습니다. “마을 축제에서 연주하면 사람들이 박수 쳐주고, 제가 유명해질 것 같아서요.”

명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배울 준비가 안 됐구나.” 소년은 실망했지만 매일 명인의 집 앞을 지나다니며 그가 연주하는 피리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습니다. 소년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명인의 피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빗소리와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곡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소년은 넋을 잃고 들었습니다. 비가 그치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다음 날 소년은 다시 명인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제가 알았어요. 피리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부는 게 아니라 제 마음을 담아내는 거네요. 어제 빗소리와 피리 소리가 섞일 때 너무 아름다웠어요. 저도 그런 소리를 내고 싶어요.” 명인은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제야 배울 준비가 됐구나. 배움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주는 기쁨을 알 때 시작되는 거란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

이 이야기는 배움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공자는 논어의 첫 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배움 그 자체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배움을 의무나 수단으로만 여깁니다. 시험을 위해, 승진을 위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배웁니다. 그래서 배움이 고통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배움이 언제 진짜 즐거워지는지, 그 순간을 찾아가려 합니다.

왜 배움이 즐겁지 않을까요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시험 기간만 되면 머리가 아프고, 책만 펴면 졸음이 쏟아지고, 수업 시간은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어른이 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격증 공부, 외국어 공부, 업무 관련 학습. 시작은 하지만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 번째 이유는 배움의 목적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배움 자체가 아니라 배움이 가져다줄 결과만 생각합니다. 이런 배움은 당근과 채찍에 의한 학습입니다. 보상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합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비교와 경쟁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잘해야 하고, 1등을 해야 하고,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 배움이 경주가 되어버렸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모두 잊어버린 후에 남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어버리기도 전에 다음 것을 외우느라 바쁩니다. 이해가 아니라 암기, 탐구가 아니라 정답 맞히기에 급급합니다.

세 번째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틀리면 안 되고, 모르는 걸 드러내면 안 되고, 질문하면 창피한 게 됩니다. 한 연구에서 성인 학습자의 68%가 “잘못된 답을 말할까 봐 질문을 주저한다”고 답했습니다. 배움은 모르는 상태에서 아는 상태로 가는 과정인데, 모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니 배움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네 번째는 즉각적인 결과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한 달 만에 영어 마스터, 3개월에 전문가 되기. 빠른 성과를 약속하는 광고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진짜 배움은 시간이 걸립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고 했습니다. 배움은 평생의 여정입니다.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멈추면 늙는다.

헨리 포드

배움이 즐거워지는 전환점

소년이 피리를 배우고 싶어 한 이유가 바뀌었을 때, 배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에 배우고 싶어졌을 때. 이것이 바로 배움의 전환점입니다.

첫 번째 전환은 호기심을 되찾는 겁니다. 어린아이들은 “왜?”라고 끊임없이 묻습니다. 하늘은 왜 파란지, 새는 왜 나는지, 물은 왜 흐르는지. 세상 모든 게 신기하고 알고 싶어서 견딜 수 없습니다. 그게 진짜 배움의 시작입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나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열정적으로 호기심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40대 직장인은 우연히 천문학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별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하는 장면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들이 별에서 왔다니, 정말 놀라웠어요.” 그는 그날부터 천문학 책을 사 보기 시작했습니다. 시험도 없고 자격증도 없습니다. 그냥 알고 싶어서 배웠습니다. 6개월 후 그는 동네 천문대 자원봉사자가 되었고, 지금은 매주 주말 별을 관측하며 행복해합니다.

두 번째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겁니다. 피아노를 치는 목적이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게 아니라 피아노 치는 그 순간이 즐겁기 때문일 때, 진짜 배움이 일어납니다. 헨리 포드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멈추면 늙는다”고 말했습니다.

한 연구는 악기를 배우는 성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한 그룹은 3개월 후 발표회를 준비하게 했고, 다른 그룹은 목표 없이 그냥 즐기며 연습하게 했습니다. 3개월 후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발표회를 준비한 그룹은 실력은 빨리 늘었지만 배움의 지속률이 낮았습니다. 발표회가 끝나자 70%가 연습을 그만뒀습니다. 반면 즐기며 배운 그룹은 실력 향상이 더뎠지만 92%가 계속 연주를 이어갔고, 1년 후에는 이 그룹의 실력이 더 높았습니다.

세 번째는 의미를 발견하는 겁니다. 내가 배우는 이것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때 배움이 살아납니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했습니다. 배움과 삶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 주부는 아이 이유식을 만들면서 영양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레시피를 따라 했는데, 어느 날부터 “왜 이 재료를 쓰지?”, “영양소는 어떻게 작용하지?” 궁금해졌습니다. 영양학 책을 보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했습니다. 3년 후 그녀는 영양사 자격증을 땄고, 지금은 유아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배움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어요. 제 아이와 연결되니까 하나하나가 다 의미 있더라고요.”

배움의 기쁨을 만드는 방법

첫 번째는 작은 성취를 자주 경험하는 겁니다. 큰 목표만 세우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단계로 나누세요. 영어 공부한다면 “유창하게 말하기”가 아니라 “오늘 단어 10개 외우기”, “오늘 짧은 글 하나 읽기”로 시작하는 겁니다.

한 연구에서 학습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같은 내용을 가르쳤습니다. 한 그룹은 전체를 한 덩어리로 주고, 다른 그룹은 작은 단계로 나눠서 각 단계마다 성취를 확인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작은 성취를 자주 경험한 그룹이 학습 만족도가 73% 높았고, 학습 지속률도 2배 이상 높았습니다. 뇌는 작은 성공을 경험할 때마다 도파민을 분비하며 “더 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두 번째는 실수를 환영하는 태도입니다. 실수는 배움의 증거입니다. 실수하지 않는다는 건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가장 유능한 사람은 배움에 힘쓰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배움에 힘쓴다는 건 실수하는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은 매달 “최고의 실수상”을 수여합니다. 가장 창의적인 시도를 하다가 실패한 사람에게 주는 상입니다. 이 회사의 CEO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혁신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틀려도 괜찮다는 안전감이 있을 때 진짜 배움이 일어납니다.

세 번째는 배운 것을 즉시 써보는 겁니다. 배우고만 있으면 지루합니다. 써먹어야 재미있습니다. 요리를 배웠으면 만들어 먹어보고, 악기를 배웠으면 연주해보고, 언어를 배웠으면 대화해보는 겁니다.

한 영어 학원은 독특한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수업 시간의 70%를 학생들이 실제로 말하게 했습니다. 문법 설명은 10분, 나머지는 전부 대화 연습입니다. 처음엔 학생들이 당황했지만 3개월 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배운 걸 바로 써보니까 실력이 느는 게 보여요. 재미있어요.” 학습 지속률이 기존 학원보다 2배 이상 높았습니다.

네 번째는 함께 배우는 겁니다. 혼자 공부하면 외롭고 힘듭니다. 같이 배우는 사람이 있으면 동기가 생기고 즐거워집니다. 스터디 그룹, 온라인 커뮤니티, 학습 동아리 무엇이든 좋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혼자 배우는 사람의 학습 지속률은 30%인 반면, 함께 배우는 그룹의 지속률은 65%였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모르는 걸 물어보고, 배운 걸 나누면서 배움이 즐거워집니다.

나이와 상관없는 배움의 기쁨

“나이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굳어서”, “이제 배워봐야 뭐하나” 이런 말들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뇌과학은 명확히 말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뇌는 평생 배울 수 있다고.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뇌에 새로운 신경 회로가 만들어집니다.

60대에 피아노를 시작한 한 할머니는 처음엔 악보 읽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손가락도 잘 안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30분씩 연습했습니다. 2년 후 그녀는 동네 경로당에서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젊었을 때 못 이룬 꿈을 지금 이루고 있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게 즐거워요. 오늘은 무슨 곡을 연습할까 생각하면서요.”

한 연구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배우게 했습니다. 디지털 사진 편집, 외국어, 악기 중 하나를 선택해 3개월간 배웠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학습자들의 인지 능력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우울증이 감소하고 삶의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배움 그 자체가 노화를 늦추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 겁니다.

추사 김정희는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평생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유배지에서도 책을 읽고 글씨를 썼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작품은 더 깊어졌습니다. 배움은 나이를 초월합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

르네 데카르트

배움이 삶이 되는 순간

피리 소년은 명인에게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소리도 제대로 안 났습니다. 손가락이 아프고 입술이 부르텄습니다.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졌고, 어느 날 처음으로 온전한 한 곡을 연주했을 때 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명인이 물었습니다. “이제 마을 축제에서 연주하고 싶은가?” 소년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그냥 매일 피리를 부는 게 좋아요. 다른 사람이 듣든 안 듣든 상관없어요.”

르네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배움은 시공간을 초월해 위대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겁니다.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 내 삶에 적용하고, 다시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배움이 즐거워지는 순간은 특별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 시험 점수에도, 자격증에도, 남들의 인정에도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그 자체의 기쁨에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의 전율, “이게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발견하는 순간의 놀라움. 거기에 배움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작은 것 하나를 배워보세요.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것, 해보고 싶었던 것 무엇이든 좋습니다. 잘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겨보세요. 공자가 말했듯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익히는 것, 그 자체가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느끼는 순간, 당신의 삶은 배움의 여정이 되고, 매일이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 찰 겁니다. 배움은 의무가 아니라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받아들이는 순간, 세상은 배울 것으로 가득한 놀이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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