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뇌를 깨우는 첫 단추: 당신의 ‘작업 기억력’ 수준은?

어느 마을에 두 명의 대장장이가 살았습니다. 한 대장장이는 작업대가 넓고 깨끗했습니다. 연장을 꺼내면 바로 손이 닿는 곳에 정리되어 있고, 필요한 재료도 한눈에 보였습니다. 그래서 일할 때 망치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여러 도구를 동시에 자유롭게 쓸 수 있었습니다. 다른 대장장이는 작업대가 좁고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연장을 찾으려면 한참을 뒤져야 했고, 작업대가 좁아서 한 번에 한두 개 도구밖에 올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망치를 쓰려면 칼을 치워야 하고, 칼을 쓰려면 또 망치를 치워야 했습니다.

같은 칼을 만드는데 첫 번째 대장장이는 두 시간이 걸렸고, 두 번째 대장장이는 여섯 시간이 걸렸습니다. 실력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작업대의 차이였습니다. 넓고 정리된 작업대를 가진 사람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다루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지만, 좁고 어지러운 작업대를 가진 사람은 매번 찾고 치우고 다시 꺼내는 데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생산성이 높아진 작업대

우리 뇌에도 이런 작업대가 있습니다. 바로 ‘작업 기억’이라는 공간입니다. 공부할 때, 문제를 풀 때, 대화할 때 지금 당장 필요한 정보를 잠깐 올려두고 쓰는 뇌의 작업대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모두 잊어버린 후에 남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먼저 이 작업 기억이 잘 작동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공부 잘하는 뇌의 비밀, 바로 작업 기억력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작업 기억이 뭔가요?

작업 기억은 짧은 시간 동안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그걸로 뭔가를 하는 능력입니다. 단순히 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정보로 생각하고, 계산하고, 판단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 뇌의 메모장이자 작업대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선생님이 “5 곱하기 7을 하고, 거기에 12를 더한 다음, 3으로 나누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걸 들으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해야 합니다. 5 곱하기 7이 35라는 걸 계산하고, 그 35를 기억하면서 12를 더해 47을 만들고, 다시 그걸 3으로 나눠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간 결과를 계속 머릿속에 담아두고 써야 하는데, 이게 바로 작업 기억입니다.

또 다른 예시입니다. 친구가 전화번호를 불러주면 종이에 적을 때까지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죠? “010-1234-5678, 010-1234-5678” 이것도 작업 기억입니다. 레시피를 보고 요리할 때 “먼저 물을 끓이고, 그 사이에 야채를 썰고, 물이 끓으면 면을 넣고…” 이렇게 순서를 기억하며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것도 작업 기억입니다.

인지과학자들은 작업 기억을 “언어 이해, 학습, 생각하기 같은 정신 활동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잠깐 저장하거나 다루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합니다. 심리학자 조지 밀러의 유명한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성인은 작업 기억에 7±2개, 즉 5~9개 정도의 정보만 담을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이것이 실제로는 4개 정도로 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보고합니다. 시간도 짧아서 보통 몇 초에서 최대 30초 정도밖에 안 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버립니다.

작업 기억이 공부에 왜 중요할까요?

작업 기억은 모든 학습의 엔진입니다. 공부를 하려면 읽은 내용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이해해야 하고, 앞에서 배운 걸 기억하면서 뒤에 나오는 내용과 연결해야 합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는 조건들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계산을 해야 하고, 글을 쓸 때는 주제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문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게 작업 기억이 잘 작동해야 가능합니다.

국내 연구진이 읽기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의 작업 기억을 분석한 결과, 이 학생들은 작업 기억 능력이 또래보다 낮았습니다. 문장을 읽으면서 동시에 앞 문장의 내용을 기억하고 연결하는 게 어려웠던 겁니다. 작업 기억이 좁아서 한 번에 하나만 처리하다 보니 전체 맥락을 놓쳤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지식이란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자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첫 단계가 바로 작업 기억입니다. 작업 기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지식이 들어올 문 자체가 좁은 겁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배워도 작업 기억이 받쳐주지 못하면 금방 흘러나갑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윌리엄 글래서가 제시한 학습 피라미드에 따르면 학습 방법에 따라 기억하는 정도가 다릅니다. 그냥 읽기만 하면 10%, 듣기만 하면 20%, 보기만 하면 30%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75%,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면 90%를 기억합니다. 왜 그럴까요? 직접 하거나 가르칠 때는 작업 기억을 훨씬 더 활발하게 쓰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정보로 뭔가를 하니까 작업 기억이 깊이 관여하고, 그래서 더 잘 기억되는 겁니다.

작업 기억력 체크해보기

대장장이의 작업대처럼 누구나 자기만의 작업 기억 크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넓고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좁고 어질러져 있습니다. 당신의 작업 기억은 어떤가요?

다음 상황들을 떠올려보세요. 여러 개가 해당된다면 작업 기억이 좁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이것 하고, 저것 하고, 그다음에 저것 해”라고 여러 단계를 한꺼번에 말하면 다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중간에 하나씩 까먹거나 순서가 헷갈립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조건이 여러 개 나오면 앞에 나온 조건을 잊어버립니다. 문제를 다시 읽어야 합니다. 긴 문장을 읽다가 뒤에 가면 앞 내용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시 읽어야 이해가 됩니다. 암산이 어렵습니다. 간단한 계산도 종이에 써야 합니다. 대화할 때 상대방이 긴 얘기를 하면 중간에 놓칩니다.

이런 경험이 많다면 작업 기억의 작업대가 좁은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작업대는 넓힐 수 있고, 정리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습니다.

작업 기억력 체크하기

작업 기억을 넓히는 방법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작업 기억은 훈련으로 늘릴 수 있습니다. 근육처럼 쓸수록 강해집니다. 서울대학교 연구팀이 최근 fMRI를 활용해 인간의 뇌에서 작업 기억의 핵심 구조를 처음으로 확인했는데, 작업 기억 훈련이 실제로 뇌의 해당 부위를 활성화시킨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청킹입니다. 정보를 덩어리로 묶는 겁니다. 전화번호 010-1234-5678을 하나하나 외우려면 11개를 기억해야 하지만, 010, 1234, 5678 이렇게 세 덩어리로 묶으면 3개만 기억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자 조지 밀러가 제안한 청킹 기법입니다. 역사 공부할 때도 “1910년 한일합방, 1919년 3.1운동, 1945년 광복”을 각각 외우는 게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주요 사건”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묶으면 훨씬 쉽습니다.

한 학생은 영어 단어를 외울 때 비슷한 뜻끼리 묶어서 외웠습니다. happy, joyful, delighted를 따로 외우는 게 아니라 ‘기쁘다’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은 겁니다. 3개월 후 그 학생의 어휘력은 2배 늘었습니다. 작업 기억을 효율적으로 쓴 덕분입니다.

두 번째는 반복하기입니다. 작업 기억은 몇 초밖에 안 가지만, 계속 되뇌면 더 오래 유지됩니다. 전화번호를 계속 중얼거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공부할 때도 중요한 내용은 읽고 나서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다시 말해보세요. “아, 이게 이런 뜻이었지” 하면서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작업 기억이 그 정보를 더 깊이 처리합니다.

세 번째는 시각화하기입니다. 추상적인 내용을 그림이나 이미지로 바꾸는 겁니다. 예를 들어 “광합성은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배웠다면, 햇빛이 나뭇잎에 들어가서 에너지로 바뀌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겁니다. 인지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시각 정보와 언어 정보는 뇌에서 서로 다른 경로로 처리되기 때문에 둘을 같이 쓰면 작업 기억 용량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설명하기입니다. 배운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거나 혼자 중얼거려 보세요. “이게 이렇게 되는 이유는 말이지…” 하면서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 가르칠 때 90%를 기억합니다. 작업 기억을 최대로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라고 했습니다. 그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바로 설명하기입니다.

작업 기억을 도와주는 생활 습관

작업 기억은 뇌의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피곤하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확 줄어듭니다. 그래서 일상 습관이 중요합니다.

첫 번째는 충분한 수면입니다. 수면 중에 뇌는 낮에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작업 기억을 회복시킵니다. 네덜란드 라드바우드 대학교 연구팀은 학습 4시간 후에 운동한 그룹이 즉시 운동한 그룹이나 운동하지 않은 그룹보다 기억력 테스트에서 훨씬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은 수면 중 뇌파를 조절했더니 학습 기억력이 2배 향상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작업 기억이 제 기능을 못 합니다.

두 번째는 규칙적인 운동입니다. 운동이 뇌의 해마 부위를 활성화시켜 기억을 강화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하루 30분 걷기만 해도 작업 기억이 향상됩니다.

세 번째는 스트레스 관리입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작업 기억을 방해합니다. 시험 불안이 심한 학생들이 아는 것도 까먹는 이유입니다. 작업 기억이 불안으로 가득 차서 정작 필요한 정보를 담을 공간이 없어지는 겁니다. 깊은 호흡, 짧은 휴식, 긍정적 생각이 작업 기억을 지킵니다.

네 번째는 멀티태스킹 줄이기입니다. 공부하면서 스마트폰 보고, 음악 듣고, TV 켜놓는 건 작업 기억을 나눠 쓰는 겁니다. 좁은 작업대를 더 좁게 만드는 셈입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집중하세요.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평생 배우기에 힘써야 한다. 정신에 담고 머리에 집어넣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자산을 쌓는 첫 단계가 집중입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학습 능률이 올라간 책상

당신의 작업대를 정리하세요

대장장이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좁고 어지러운 작업대를 가진 대장장이도 작업대를 정리하고 넓히면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작업 기억도 훈련하고 관리하면 공부 효율이 확 달라집니다.

공자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배우고 익히려면 먼저 뇌의 작업대가 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작업 기억이 좁으면 배워도 금방 흘러나가고, 익히려 해도 담을 공간이 없습니다.

오늘부터 당신의 작업 기억을 점검해보세요. 정보를 덩어리로 묶고, 중요한 건 반복하고, 이미지로 그려보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보세요. 잠도 충분히 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줄이세요. 이런 작은 습관들이 당신의 뇌 작업대를 넓히고 정리합니다.

넓고 깨끗한 작업대를 가진 대장장이가 좋은 칼을 빨리 만들듯이, 잘 훈련된 작업 기억을 가진 학생은 어려운 내용도 빠르게 이해합니다. 공부 잘하는 비결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뇌의 작업대를 잘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작업 기억, 오늘부터 키워보세요. 그것이 우등생 되는 첫 단추입니다.

작업 기억력 체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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